극예술연구회 (劇藝術硏究會)는 일제 강점기 1931년 에 창립된 신극 운동 단체이다. 줄여서 극연 (劇硏)이라고도 부른다.

결성

일본 에 유학하여 신극을 공부한 해외문학연구회 출신의 해외문학파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이들은 흥행을 목표로 한 대중연극에 대항하여 순수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설립 목적을 "극에 대한 일반의 이해와 우리 신극 수립을 위하야 극예술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넓히고 기성극단의 흐름을 구제하는 동시에 나아가서 진정한 의미의 우리 신극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밝혀 계몽주의적 성격이 뚜렷하다.

활동

제1기로 불리는 초기에는 홍해성 이 연출을 담당해 주로 번역극을 공연했고, 1934년 홍해성이 상업극단인 동양극장 으로 옮겨간 뒤 유치진 이 연출을 맡아 창작극 위주로 변경되었다. 유치진이 이끈 1938년 2월까지는 제2기로 불린다. 이후 극연좌 로 개칭하여 1939년 5월에 해산될 때까지 활동했다.

극예술연구회는 서유럽 사실주의 연극과 창작극을 함께 공연했다. 총 24회의 정기공연 동안 창작극 12편과 번역극 24편을 올렸다. 창작극 가운데는 유치진의 작품이 6편으로 가장 많았다. 제1기의 대표작으로는 유치진의 출세작인 《토막》이 있고, 제2기 공연작 중에는 이광래 의 《촌선생》이 유명하다. 두 작품 모두 사실주의 수법으로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소극장에서 공연하다가 부민관 공연으로 대중성을 꾀하기도 했다. 제3기인 극연좌 시기는 대중연극 공연으로 초기의 성격이 많이 변질되었다. 극연이 극연좌로 바뀐 것은 전쟁 시국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 극예술연구회의 사상을 문제 삼은 일제의 탄압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1934년 에 《극예술》이라는 연극전문지를 창간하여 1936년 까지 총 5권을 발행하기도 했다.